[ISBN-8988907582]
MurrayGellMann과 20세기 물리학의 혁명
GeorgeJohnson 지음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2004년 5월에 보스톤에서 열리는 복잡계 학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근데 참석자에 MurrayGellMann이 끼어 있었다. 또 그날따라 인터넷 서점에 갔다가 겔만에 대한 이 책이 나왔다기에 겸사겸사 사게 되었다.

이 책에서는 머리 겔만 이라고 칭하는데 좀 웃기다. ㅎㅎ

머리말: LaVega로 가는 오솔길


그는 철학을 시간 낭비라고 여겼다.


... 세기의 대환원주의자(ArchReductionist)라고 부르는 것은 아주 적절하다고 하겠다. 하지만 감상적인 전체론(Holism)이 한 조류를 형성하기 훨씬 전부터 겔만은 하나의 중요한 진실을 존중하고 있었다. 모든 것을 아래쪽으로 환원시켜 내려갈 수 있다고 해서 위쪽으로 올라가는 설명이 자동적으로 도출된다고 볼 수는 없다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SantaFeInstitute의 설립을 도왔다. 그의 동기에는 정치적인 면도 작용하고 있었다. 열정적인 환경보호론자였던 겔만은 환경보호라는 대의명분을 뒷받침할 과학적 근거를 찾고자 했다. 그는 열대 우림의 복잡성을 이해하고자 했고 이를 통해 세계로 하여금 그 보존의 필요성에 눈을 뜨게 하고 싶어했다.


겔만은 특히 과학저술가들에게 냉담했다. ... 그 모임은 "해와 그늘"이란 뜻을 가진 솔 이 솜브라(SolYSombra)에서 열렸다. 산타페의 옛 오솔길에 있고 아주 훌륭한 경관을 지닌 그곳은 GeorgiaOkeeffe란 여류 미술가가 최후를 맞기 위해 찾아간 곳이기도 하다. ...

... JamesGleick이 이에 관하여 쓴 ChaosBook란 제목의 과학 교양서에 대하여 큰 소리로 불평을 털어놓았다. 나는 그 책을 아주 높이 평가해왔던터라 겔만이 이 글릭이란 작자라고 부르면서 ... 마침내 글릭이 쓴 파인만의 전기에 대해서는 완전히 노발대발하고 말았다. (나중에 겔만은 글릭의 형제를 만났는데 그는 과학자로서 마침 그때 SantaFe를 방문중이었다. 뜻밖에도 이들은 잘 어울렸고 이후 겔만은 그를 좋은 글릭이라고 불렀다.


그로부터 얼마 뒤 ... 산타페로 이사했다. 그곳 학회에서 겔만을 만날 수 있었고, "QUARKS"란 번호판을 붙인 금색 레인지로버를 몰면서 시내를 돌아다니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1 이름에 하이픈이 들어간 미국인

겔만의 주장에 따르면 Quark라는 이름은 순전히 소리로부터 나왔다고 한다. 그 소리를 어떻게 표시할까 고민하던 차에 JamesJoyce의 소설 FinnegansWake에 나오는 구절 ThreeQuarksForMusterMark를 보았다고 한다.

미국의 모든 주소중에 Gell-Mann으로 나오는 결과는 ... 우리 주인공의 집 두 곳 뿐이다.


단어와 언어에 대한 겔만의 열정은 도를 지나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사람을 처음 만나면 즉각 상대방 이름의 어원을 상세히 살펴보는 것으로부터 대화를 시작하며 실제발음은 어째야 하는지도 알려준다. 그러나 "Gell-Mann"의 기원에 이르면 이내 말을 삼가곤 한다.


집안에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겔만의 첫마디는 어느 날 저녁 가족들이 집 앞의 계단에 앉아 있을 때 터져 나왔다. 그날 겔만은 주변의 가로등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하는 것을 보더니 "바빌론의 불빛The lights of Babylon!"이라고 떠듬떠듬 말문을 열었다.

...

겔만이 4살인가 5살 무렵 이스라엘은 어디선가 얻은 로마 동전을 겔만에게 보여주면서 말했다. "겔만, 이것 좀 봐. 이것은 티베리우스 황제 시대의 동전이야." 그런데 이를 들은 겔만은 이스라엘의 발음을 바로잡았으며 ... 뿐만 아니라 동전을 좀 더 세밀히 들여다보더니 티베리우스 황제가 아니라 더 후대의 황제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단정했다.

...

3살 때 이미 겔만은 큰 수의 곱셈을 암산으로 해냈다. 7살 때는 철자법 대회에 참가하여 5살이나 많은 애들을 모두 물리치고 우승했으며, 그의 우승을 결정지은 단어는 "subpoena소환장"이었다. 그런데 그는 이 단어를 맞췄을 뿐 아니라 사회자의 발음까지 교정해줬다. (이 단어는 라틴어 sub po En a에서 유래했다.)

2 걸어다니는 백과사전

... 마치 이는 EncyclopaediaBritannica를 급우로 둔 것과 같았다. ... "가장 어려운 과목은 무엇인가" 라는 설문에 25명은 수학, 18명은 물리, 10명은 라틴어, 10명은 역사라고 대답했는데, 익명의 한 학생은 어려운 과목이 전혀 없다고 답했다.

...

어느 날 저녁 브랜트는 겔만의 방문을 두드렸다. 그리고는 수업 중 이해할 수 없었던 문제를 어찌 푸는지 물어봤다. 겔만은 잠시 생각하더니 곧장 답을 말했다. 브랜트는 "이봐, 나는 답을 원하는 게 아니야. 도대체 어떻게 답을 얻었는지 좀 차근차근 이야기해 봐"라고 부학했다. ... 겔만의 머리를 스쳐간 추론은 너무나 빨라서 그 자신도 알아차리기 어려운 듯 싶었다. ... 그는 만일 이것이 예일 대학의 물리학 전공자가 보여주는 전형적인 예라면 자기에게는 아무런 희망도 없다고 생각했다. ... 물론 겔만은 전형적인 예가 전혀 아니었으며, 브랜트는 나중에 그토록 일찍 포기한 것을 후회하곤 했다.

...

언젠가 겔만은 시모니의 책이 온통 밑줄과 표시로 뒤범벅이 된 것을 보고 깜짝놀라 말했다. "책에 그렇게 잔뜩 표시를 하면 어떻게 하니? 책을 존중할 줄 알아야지."

...

공부를 하지 않았기에 겔만은 언제라도 맥주나 늦은 밤 간식 또는 필연적으로 제기되는 정치적 토론 등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겔만은 SamuelHuntington과 함께 스스로 FAR(Fathers of American Revolution)이라고 불렀던 정치 커뮤니티에 속해 있었다고 한다.

"어떻게 그 구질구질한 곳에 간단 말인가?"라고 그는 계속 되뇌었다. 여러 해가 지난 뒤 당시 그는 MIT에 가든지 자살하든지 양자택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곤 했다.


3 메커니즘에의 감각

이스코프(MIT에서 겔만을 가르침)가 나중에 결론지었듯, 한 문제에 오래도록 집중하지 못한다는 점이 결정적이었다. 그(바이스코프)는 호기심이 이끄는 대로 따라 한 문제에서 다른 문제로 한껏 넘나들었다. 한 마디로 그는 스토아적이었다. 언젠가 그는 현재의 그를 있도록 한 광범위하고도 일반적인 지식과 노벨상을 맞바꾸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판에 박힌 풍자적인 투로 "나는 '無에 관한 모든 것'을 아느니 차라리 '모든 것에 대한 무지'가 더 낫다고 생각한다."라고 자신을 비난하듯 말했다. 겔만은 나중에 이를 두고 KillerInstinct가 부족하다고 평했다.


물리학은 수에 대한 마술 이상의 것이다. 겔만은 비키 덕분에 "은어와 과장법을 피해야 한다"는 점, "수학적 정교성보다 증거와의 일치를 더 높이 평가해야 한다"는 점, 그리고 언제나 "가능한 한 단순함을 추구해야 한다는 점 등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고 말했다.


일주일에 두세 번씩 겔만을 비롯한 한 무리의 야심에 찬 물리학자들은 골드버거의 차를 타고 매사추세츠 애비뉴를 따라 하버드 대학으로 가서 JulianSchwinger의 세미나를 참관했다. 슈윙거의 학생들은 자신감에 넘치는 깔끔한 옷차림의 젊은 거장이 그의 이론을 우아하고도 정교하게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그 자신 외에 아무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할 난해한 개인적 기호들 속에 펼쳐내는 모습을 경외에 찬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흠잡을 데 없으며 찬란히 빛나는 그의 강의는 이미 전설로 되어 있었다.


화학을 전공하는 제이 마일리JayMeili라는 스위스 출신 미국인은 대학원 숙소의 같은 층에 살았는데, 언젠가 겔만은 스위에스에 쓰이는 독일어 사투리 Schwyzertutsch로 조크를 던져 그를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4 위인들의 마을

... 그 폭발(최초의 원폭 실험)을 보던 중 그(펜하이머)의 해박한 두뇌로부터는 오늘날 널리 알려져 있는 바가바드기타의 한 구절이 흘러나왔다. 비슈누신은 거기에서 "나는 세계의 파괴자인 죽음이 되었다."라고 말했다


5 마력적 기억

르미는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을 과시했다. ... 마치 발전기와도 같았으며 골드버거는 이러한 르미를 "물리학 기계"라고 불렀다. ... 복도에서 그를 멈추게 한 후 질문을 하면 그는 한껏 귀를 기울인다. 르미는 듣는 척만 하거나 자신의 생각에 골몰하여 멍하니 고개만 끄덕이는 대다수의 다른 사람과는 달랐다. 그는 묻는 사람의 질문에 온 정신을 집중한다. 그야말로 질문자에 대하여 최상의 찬사를 바치는 셈인 것이다.

...

... 르미는 또한 철학도 싫어했다. 파울리는 이러한 그를 가리켜 "양자 기술자"라고 신랄하게 꼬집었다. 그가 손에 넣을 수 있는 모든 원소에 대하여 중성자 충돌 실험을 한 것은 ThomasEdison이 전구를 밝힐 필라멘트를 얻기 위하여 수많은 물질로 시험한 것을 떠올리게 한다. ... 그에게 어떤 문제를 제기하면 먼저 수학적 도구 상자로부터 사용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추려낸다. 만일 계산만으로 부족하면 실험실로 달려간다. 만일 그곳에서도 적절한 도구를 찾지 못하면 손수 선반을 돌려 만들어낸다. 그는 가장 좋은 도구는 그의 머릿속에 있다고 말했으며, 이를 가리켜 MagicMemory라고 부르기를 좋아했다. 우리들 대부분은 머릿속에 기억한 것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으며 때로는 노트에 기록해둔 것마저도 그렇게 여긴다. 그러나 페르미는 한 가지의 원칙을 세웠다. 그의 마력적 기억에 저장된 것이라면 믿을 수 있다고 보았다.


겔만은 문제를 우선 모든 방향에서 포위한 뒤 한쪽에서부터 공격을 시작했고, 그게 끝나면 다른 방향에서의 공격을 위하여 재빨리 다른 방식으로 배치했다. 프랜시스 로우는 언젠가 골드버거에게 겔만의 두뇌는 마치 널따란 땅을 비추는 서치라이트처럼 작동하여 그 안에 숨은 어두운 수학적 공간을 환히 드러내준다고 이야기했다.


6 뛰어난 아름다움

...그리고 이를 토대로 쓰여진 기사(ScientificAmerican)의 첫머리에서 겔만은 자신이 좋아하는 FrancisBacon의 다음과 같은 말을 인용했다. "뛰어난 아름다움 치고 비례상 어딘가 기묘하지 않은 것은 없다.(There is no excellent beauty that hath not some strangeness in the proportion)


7 편향된 우주


8 꿈의 장

어떤 이론이 완성되고 나서 모든 실타래가 깨끗이 정리된 후 돌이켜보면 모든 것은 본래부터 자명한 진리처럼 여겨진다. 잘못된 출발과 오랜 세월 동안의 혼란은 차츰 잊혀지고 지난 과거의 행적은 명백한 진리를 향해 펼쳐진 질서정연한 행진이었던 것처럼 보인다.

...

이렇게 하여 이 이론은 귀찮은 전문용어로 말하자면 "재규격화"되었으며 QED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수학에서 어떤 정리에 대한 증명이 끝났을 때 붙이는 QED라는 표시처럼 양자전기역학을 나타내는 QED는 완벽의 상징과도 같다.

...

그러나 이제 여러 힘들은 (특히 적어도 전자기력의 경우) 대칭성의 강제라는 목적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는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힘이 아니라 대칭성이야말로 모든 현상의 가장 깊은 근원이라고 말할 수 있다.

...

그는 자신의 직업에 대하여 흥분에 겨운 어조로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어린이가 자라서 과학자가 되면 그는 온종일 인류가 개발한 가장 흥미로운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것으로 이미 충분한 보상을 받습니다."


MurrayGellMann과 맞상대할 수 있는 흔치 않는 사람 중에는 RichardFeynman도 들어있었다. 이론 물리학에 관하여 토론하는 주례 모임에서 파인만은 좀 더 진지한 그의 동료에게 자꾸만 짓궃게 굴기를 좋아했다. 그러면 겔만은 파인만이 모르는 이야기를 내세우면서 반격했다. 이는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는데 왜냐하면 파인만은 물리학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 거의 없었던 반면 그 밖의 이야기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파인만은 별 생각 없이 "달러Dollar"라는 말의 유래를 물었다. 물론 겔만은 그것이 16세기의 은화를 가리키는 독일어 "탈러thaler"에서 나왔음을 알고 있었다. 파인만 자신은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여겨서 꺼내놓은 말이었지만 이내 자신이 실수했음을 깨달았다. 이를 기회로 겔만은 별로 알고 싶지도 않은 언어학적 지식에 대하여 일장 연설을 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파인만은 재빨리 짐짓 분개한 듯한 목소리로 "말이 났으니 말이지, 아마 백년만 지나면 'Gell-Mann'이란 이름에 하이픈이 있는지 없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 아닙니까?"라고 말했다. 파인만은 이처럼 정말 침착한 사람이었고 그의 성미를 돋우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9 마법의 8번 공

...프랑스어 공부에도 흥미를 느껴 열심히 공부했다. 그리하여 가끔씩 실수라도 했다하면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아주 괴로워했다. 파티가 끝나고 마가렛과 함께 집으로 돌아오면 밖에서 저질렀던 문법적 실수를 애석해하면서 잠을 이루지 못했으며, 시간을 그렇게 허비한 데 대하여 또 괴로워했다.


"...나는 이번 일 때문에 한 번 신세를 졌으므로 당신도 내게 한 번 아니 몇 번이라도 그 어떤 황당하고 터무니없는 일을 하더라도 기꺼이 감수하겠습니다. 그리고 지난번에 보내온 당신의 편지를 열면서 그 안에 담겨있을 당연한 분노를 예상하고 두려움에 떨었지만, 오직 우정어린 인내와 물리학만으로 가득 차 있음을 발견했던 순간은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파인만이 겔만에게 보냈던 편지


언젠가 하버드에 있는 번스타인의 한 동료는 영국의 위대한 물리학자 PAMDirac에게 한 번이라도 선취권을 두고 다퉈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은 오연한 태도로 "정말로 훌륭한 아이디어는 오직 한 사람으로부터 나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겔만은 동료 물리학자들과의 교류를 통하여 발전해 가는 듯 했다. 그는 자신의 아이디어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반사되어 나오는 것을 좋아했으며, 이를 통하여 엉뚱한 방향으로 너무 깊이 빠져들지 않도록 노력했다.


... 초기의 실험가들이 파인만과 함께 개발한 V-A 이론이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할 때도 두 사람은 오직 '아름답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이 이론을 밀고 나갔다. 그리고 이러한 미학적 감각은 충분한 보상을 받았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파인만이 이웃으로 이사 들어왔다. 겔만네가 파리에서 돌아왔을 때 파인만은 자신이 겔만을 "따라잡고 있다"고 말했다. 겔만처럼 파인만도 영국 여자를 아내로 맞게 되었고 작은 밤색 개도 키우게 되었다. 그리고는 이웃으로 이사왔으며, ... 파인만은 그녀를 자기의 가정부로 꾸미는 등 일련의 묘안을 짜내어 킬래포니아로 이민 오도록 했는데 이 일들은 그동안 칼텍의 주요 가십거리가 되기도 했다.


...길을 잃고 말았다. 이에 겔만은 차에서 내려 지나가는 인디언에게 빠져나갈 길을 물어보았다. 하지만 그 사람은 겔만의 스페인어를 이해하지 못했으며, 이에 그는 똑같은 말을 그 지방의 바자 사투리로 바꾸어 다시 물었다.


겔만은 이 구도를 팔중도(八重道,EightfoldWay)라고 불렀는데, 이는 8가지의 회전과 8개의 입자뿐 아니라 부처가 열반에 들어서기 위한 길로 제시한 팔정도(八正道), 즉 正見, 正思, 正語, 正業, 正命, 正勤, 正念, 正定에 대한 약간의 비유적 의미도 함께 곁들이기 위해서였다.


...마지막으로 팔중도에 관한 상세한 설명을 하면서 끝을 맺었다.(그는 논문의 순서를 잘 조정하여 팔중도에 관한 설명이 제 8절에 나오도록 꾸몄다) 같은 우여곡절 때문에 최종 논문은 1962년 2월이 되어서야 출판되었다. 그 전반적인 논조는 결코 대담한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겔만은 거기에 자신의 명예를 걸었다. 그리고 채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세상의 반향은 물밀듯이 전해졌다.


10 성 삼위일체

그런 뒤 사람들은 미소를 짓기 시작했고 심지어 어떤 이는 춤을 추기도 했다. 지금 이 순간 그 입자가 존재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지구상에서 오직 그들뿐이었다. 이론가들은 자신들도 알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첫 물리적 증거는 여기서 모습을 드러냈고, 팔중도의 빈칸은 마침내 이로써 채워졌다.

...

이런 결과에 너무 흥분한 나머지 미오스는 겔만에게 곧바로 알리는 것을 잊어버렸다. ... 후에 사미오스는 사진과 함께 간단한 사과의 메시지를 전해왔다. "깜박 지나쳐버린 것을 널리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어쨌거나 우리가 실험하기 전부터 그 존재를 알았던 사람은 바로 당신이었습니다!"

...

우연찮게도 겔만의 쿼크 논문은 오메가 마이너스가 발견된 바로 다음날 출판되었다.


11 에이스와 쿼크


그날 저녁 에서 묵을 때 겔만은 힌두어, 산스크리트어, 팔어에서 두루 쓰이는 바나가리 언어에 관한 책을 한 권 샀다. 그리고 트만두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책을 펼치고 몇 분 동안 글자를 살펴본 뒤 그는 다시 책을 덮고 기억을 되살려 하나씩 적어 내려갔다. 이 광경을 옆에서 지켜보던 카리아센은 경이로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눈에는 대부분의 글자가 거의 똑같은 모습으로 보였다. 그러나 겔만은 단 몇 번의 연습 끝에 모든 자모를 완전히 익혀버렸다.


겔만은 한 이론가의 업적은 그 출판된 논문을 종합하여 "(올바른 아이디어의 수) - 2 x (틀린 아이디어의 수)"란 식에 따라 평가해야 한다고 즐겨 말했다.


12 스웨덴이 주는 상

...이 강연에서 겔만은 좋아하는 몇 가지의 소품을 모아 미리 준비한 내용으로 시작했다. 맨 처음 그가 내놓은 것은 JohnUpdike성미자에 관하여 쓴 것으로 뉴요커에 발표했던 우주벌레(CosmicGall)이라는 유명한 시였다. 이 시는 물리학자들이 아주 좋아하여 많은 교수들이 연구실의 문에 붙여두곤 했다.

...

... 겔만은 계속해서 HaroldFurth가 뉴요커에 발표한 현대적 삶의 위험(PerilsOfModernLiving)이란 시를 읊었다. 퍼스가 이 시를 쓴 것은 에드워드 텔러가 이 세상의 거울상이라고 할 수 있는 반물질의 세계가 존재할 가능성에 관하여 언급한 데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 계기가 되었다.


특히 파인만은 아낌없는 찬사를 해주었다. "이번의 벨상 수상 소식은 겔만 교수가 현대의 이론물리학계에서 오랫동안 선도적인 지위에 있어왔다는 사실을 일반에게 널리 공표해주는 좋은 계기가 될 것입니다. 지난 20년 동안 기초물리학에서 이루어진 주요 진전 가운데 겔만 교수의 이름과 연관되지 않는 분야는 하나도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후 겔만은 적당한 기회를 잡아 메달을 살펴보았다. 앞면에는 AlfredNobel의 모습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풍요로운 지식의 뿔을 손에 든 자연의 여신에게 다가선 과학의 신동이 그녀의 눈앞에 드리운 베일을 걷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뒷면의 위 부분에는 Virgil의 작품 Aeneid에서 따온 글이 새겨져 있는데, (Inventas vitam juvat excoluisse per artes) 그 뜻은 문자 그대로 옮긴다면 "발명은 인생을 향상시키며 예술을 통하여 아름다워진다" ...

... 이 해의 수상자는 SamuelBeckett였다. ...


"국왕 폐하, 왕비 전하 그리고 만장하신 신사 숙녀 여러분. 이론물리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저는 오늘 과학계의 가장 큰 영예인 벨상을 받게 된 것에 대하여 자랑스러움을 느끼는 한편, 저보다 먼저 이 상을 받으신 분들의 빛나는 업적을 생각하면 부끄러운 마음이 앞서기도 합니다. 또한 여러 나라에서 소립자에 관한 이론을 연구하고 있는 수많은 동료들도 생각나며, 기런 면에서 보자면 저는 소규모의 허물없는 국제적 학술 친목회를 대표하여 이 자리에 서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 과학자들은 지칠 줄 모르는 강한 호기심에 이끌려 경이로운 게임을 영위합니다. 저는 우리의 연구가 실험 결과를 정확히 예측해내는 것으로부터 크게 놀란 적인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만든 단순하지만 우아한 식들은 마치 네트처럼 엄격한 규칙에 따라 지어낸 짧은 시와도 같습니다. 그런데 어찌해서 이것들이 대자연에 내재한 보편적인 규칙성을 그토록 정확하게 예측해낼 수 있을까요? 우리가 그런 수식들을 단순하다고 여기는 이유는 그것을 이용하는 과학이 발달하기 시작하던 당시에 이미 개발되어 있던 수학적 표기법에 따라 쉽게 표현될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우아함으로 드러나는 표현들은 사실 말하자면 자연의 법칙들이 여러 가지 다른 수준에서 우리와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제가 이런 법칙들을 탐구하는 일은 무한히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나는 자연에 대한 사랑과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제가 보기에 소립자와 우주의 연구로부터 밝혀지는 자연의 기본 법칙에 담긴 아름다움은 깨끗한 스웨덴의 호수로 빠져드는 비오리의 매끄러움이나 한밤중에 캘리포니아만의 바다 표면에 은빛으로 반짝이는 자취를 남기고 떠나는 돌고래 그리고 이 연회장에 모여든 숙녀 여러분들의 사랑스러움에 견줄 수 있습니다."

하이쿠보다 앞선 시대에 나온 일본 고대의 정형시 와카 및 비오리에 대한 언급만으로도 이 연설은 겔만다운 박식함을 충분히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더욱 놀랍게도 그는 웨덴어로 연설을 계속했다. 그리고 졸음에 겨워 고개를 떨구고 있던 국왕은 깜짝 잠이 깨고 말았다.

"Detta lands folk ..."

"이 나라의 국민들은 온갖 다양한 모습으로...

...하지만 겔만은 나중에 그 연설 부분의 단어들을 전체적으로 자기가 좀 더 익숙해 있었던 덴마크어에 가깝게 발음했다는 점을 두고 괴로워했다. ...


13 양자색역학


한편 노벨상의 영예로도 겔만의 글쓰기 장애는 극복되지 않았다. 수상자들이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한 가지 의무는 노벨 주간에 과학에 대한 강연을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스웨덴의 왕립과학원은 매년 수상식이 끝난 후 곧 이 원고들을 모아 벨상LesPrixNobel이라는 이름의 기념집으로 발간했다.

...

"VERY SORRY TO BE EVEN MORE DELIQUENT THAN FEYNMAN STOP HVAING ..." (겔만의 원고 지연 사과 전보)

...

그해 가을 책이 출판되었을 때 겔만의 연설은 당연하게도 다음과 같은 주석과 함께 목차에만 소개되었다. ...


1966년의 버클리 모임에서와 같이 이번에도 겔만에게는 그동안 이 분야에서 이루어졌던 발전을 되돌아보는 마무리 연설을 할 영예가 주어졌다. 이 연설에서 그는 청중들에게 다음의 그림을 보여주었다.

모양은 소립자들의 성질에 대하여 설명할 때 흔히 등장하는 막대그래프처럼 생겼지만 겔만은 이것이 바벨탑의 그림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름은 수메르 언어로 "에-테멘-안-키"(E-TEMEN-AN-KI)라고 썼는데 그 뜻은 "하늘과 땅의 토대가 되는 집"이라고 했다.


14 초물리학

(SuSy하에서) 입자들은 sparticle이라고 불리는 초대칭적 파트너를 가져야 한다. squark, ... 겔만까지도 그 이름 짓기가 힘에 부친다고 여길 정도였다. 그래서 이런 용어들을 비꼬아 그는 slanguage라고 부르기도 했다.

역자주에 s-가 super에 해당한다는 말만 있고 'slang'에 대한 언급이 없다. --a

... 다른 초끈 이론가도 방문 연구를 할 수 있도록 주선했다. ... 다만 그는 인기 없는 아이디어라도 깊이 탐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려고 노력했으며, 스스로 이를 "멸종 위기에 처한 종을 위한 자연 보호 구역"이라고 불렀다.


라몽은 겔만과 함께 일하노라면 마치 잘 정돈된 길을 빠른 차로 지나가는 듯한 느낌을 방았다. 일찍이 그는 겔만보다 더 영리한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겔만은 만일 어떤 아이디어가 분명 옳다고 생각되면 절대로 그냥 흘려보내는 법이 없었다. 그것을 끝까지 물고 늘어져서 옳으면 그 옳음을 증명하고 틀리다면 자기의 직관이 왜 흐트러졌는지를 밝혀내고야 말았다. 별로 상관도 없을 것 같은 곳들 사이에서 남들의 눈에는 잘 보이지도 않는 구조와 패턴을 감지해내는 겔만의 능력은 아직도 시들지 않았다. ... 이에 비하면 파인만은 참으로 대조적이어서 오직 자기가 붙들려 있는 일에만 온 신경을 쏟았다. 만일 파인만에게 어떤 문제를 제기하여 그의 정교한 정신적 거름 장치를 거치게 한다면 그는 이를 낱낱이 분해한 후 새로 조립해서 이제껏 볼 수 없었던 가장 선명한 이해를 건네준다. 그러면 겔만은 그 아이디어를 다른 분야의 지식들과 어떻게 연결해야 하는지 보여준다. 한 마디로 이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경이로운 지적 결합이었다.


겔만은 거기(AlbertEinstein 탄생 백주년 기념회) 참석했던 물리학자들에게 아인슈타인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두 가지의 교훈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첫번째는 다음과 같았다. "성공적인 물리 이론을 개발함에 있어 우리는 부수적으로 딸려오는 불필요한 지적 잎사귀들을 떨쳐버려야 합니다.게으름 때문에 또는 굳이 필요하지 않음에도 예전부터 내려오는 것이기에 덧붙여진 가정들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경향에 빠지는 이유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차츰 높은 수준의 이론적 연구를 감당해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여겨집니다." 젊은 시절 아인슈타인은 시공간의 동시성과 절대성이라는 언뜻 보기에는 명백하게 여겨지는 관념들도 언제든지 과감히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나이가 든 후에는 죽을 때까지 고전적인 결정론에 얽매어 헤어나지 못했다. 이어서 겔만은 "두 번째의 교훈은 어떤 이론이 잘 운용되는 것으로 확인되면 이를 더욱 진지하게 탐구하여 본래의 제안자가 제시했던 가능성보다 훨씬 큰 잠재력이 숨어있지는 않은지를 면밀하게 검토해봐야 한다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바로 겔만 자신이 평생을 통하여 견지해왔던 연구 자세이기도 했다.


그는 또한 뉴에이지 운동의 허위성을 타파하는 데에 헌신한 수학자 페르시 디아코니스(PersiDiaconis)와 마술사 JamesRandi가 맥아더상의 수상자로 선정되도록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

1986년에는 개인적으로 72인의 노벨상 수상자로부터 서명을 받아 진화론과 창조과학을 같은 시간만큼 가르치라고 규정한 LouisianaState법을 철회하도록 촉구하는 서한을 미국대법원에 제출하기도 했다.

...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닌 바로 겔만 자신의 아이가 그런 비이성적 세계에 깊이 빠지게될 줄 누가 알았으랴?


15 단순성에서 복잡성으로

책(파인만씨농담도잘하시네)를 받아본 겔만은 죽 훑어보면서 자기가 나온 대목들을 찾아보았다. 그런데 무엇보다 기분 상하는 일은 그의 이야기가 너무 적게 나온다는 점이었다. 346페이지 짜리 책에서 겔만은 오직 6페이지라는 미미한 분량밖에 차지하지 못했다. 게다가 파인만은 1957년 약한 상호작용이 V-A형태라는 것을 자기가 최초로 알아낸 것처럼 기술했는데 겔만의 눈길이 이를 놓칠 리 없었다.

... 이미 시들해진 겔만과 파인만의 관계는 파인만의 명성이 높아질수록 악화되어갈 뿐이었다. ...


... 이밖에 겔만의 가장 과격한 적수로는 한때 의사였다가 이론 생물학자의 길로 뛰어든 StuartKauffman을 꼽을 수 있었다. 그는 환원주의를 배격하면서 이 세계에서 자발적인 질서가 생성되어 나오는 형상을 정확히 기술하려면 이제껏 없었던 새로운 열역학 법칙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끊임없이 되풀이했다. 이와 같은 카우프만의 장광설에 지친 겔만은 일부러 그를 "의사 선생님"이라고 불렀으며 ... 그러자 카우프만은 이에 대한 앙갚음으로 나중에 그의 연구실 문에 붙이는 이름판을 "Stuart Kauf-Mann"이라고 고쳐 달았다.


겔만은 특히 자신이 ComplexAdaptiveSystem이라고 부른 개념에 푹 빠졌다. ...겔만은 이 모델을 "스키마schema"라고 불렀다. 그리고 특히 다른 사람들이 그 복수형을 "schemas"라고 부르지 않도록 항상 주의를 주었다. (올바른 복수형은 "schemata"이고 액센트는 첫 음절에 있다.)


심지어 어떤 물리학자와 철학자들은 우주를 가능성의 안개로부터 현실로 드러나게 하는 데에 있어 인간의 의식이 뭔가 근본적인 역할을 한다고 주장했다. 겔만은 이런 생각을 황당무계한 것이라고 보았으며 "양자적 헛소리"(Quantum flapdoodle)라고 불렀다.


(Quarantine이 그런 가정을 하고 써나간 소설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한 무리의 과학자들은 이른바 DeCoherence라는 개념을 고안했다. ... 겔만과 하틀도 이에 동조했다. 이 아이디어에 따르면 아직 관측되지 않은 입자들은 QuantumCoherence상태에 있다고 하며 이 상태에서는 모든 가능성이 중첩되어 있다. ... 비록 미미하지만 이런 상호작용들은 모두 일종의 관측이라고 볼 수 있으며 따라서 이로 인하여 양자적 맞음 상태는 흐트러지게 된다.

...

우주는 수많은 다른 모습이 가능한데도 불구하고 왜 다른 모습이 아닌 바로 이 모습을 띠고 있을까? 그는 이문제에 대하여 HughEverett이란 물리학자가 제시한 아이디어에 크게 매료되었다. 에버렛은 우주의 전개 과정을 JorgeLuisBorges가 쓴 GardenOfForkingPaths처럼 여러 가능성들이 가지쳐 나가는 모습으로 상상했다. 따라서 어떤 실험가가 전자의 위치를 측정하면 한 경로에서는 이곳에서 발견되지만 다른 경로에서는 다른 곳에서 발견된다. ... 이 개념은 오늘날 ParallelUniverse란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겔만은 병행 우주 또한 "양자적 헛소리"의 일종으로 여겼다.


16 쿼크와 재규어

강당을 빠져나오던 중 파인만의 일부 동료들은 이 추모식에 뭔가 중요한 요소가 빠졌다는 점을 깨달았다. 머리 겔만은 어디에 있었을까? ...

그러나 나중에 밝혀졌듯 이유는 따로 있었고 그다지 복잡한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파인만이 알았다면 그 또한 웃으면서 좋아했을 내용이었다.

...

... 그런데 막상 재규어 머리 모습의 장식품을 실물로 보고 난 겔만은 사고 싶은 마음이 별로 내키지 않았다. 그래서 이를 스웨트남에게 맡겨둔 채 환불이나 다른 물품으로 교환하고자 했다. 그러나 새로운 협상이 진행되던 중에 우스꽝스런 방탄복에 라이플로 무장한 연방 수사관들이 들이닥쳤다. 스웨트남과 공모했던 사람이 밀고를 해버렸던 것이었다. 겔만은 이때 막 파인만의 추모식에 참석하려고 떠날 참이었다. 그러나 세관 역사상 가장 대규모로 이뤄진 이 습격에는 60여 명의 요원들이 동원되어 남부 캘리포니아 지역의 여러 거래상과 고객을 덮쳤으며 시판 시대의 물품을 포함한 2천여 점의 골동품이 압수되었다.


... 전통적으로 물리학자들은 이 나이가 되면(60) 기념논문집을 발간했다. ... 그의 60세 축하연은 일정을 앞당겨 1989년 1월에 개최하기로 정해졌다.

...

반면에 겔만은 텔레그디가 잘 편집해서 보여준 몇 가지 슬라이드는 아주 좋아했다. ... 텔레그디는 곡예사 모습의 슬라이드를 보여줄 때 "놀라운 대칭성과 평형 감각을 가졌다"고 말했다.


그 뒤 겔만은 자신의 내적 세계에 대한 대통합적 그림이라고 할 광범위한 내용의 책을 쓰기로 작정했다. 그런데 이때 위 이야기 속의 재규어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새로운 재규어가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 새 재규어는 뉴멕시코에서 알게 된 젊은 중국계 미국인 작가 아더 쉐(Arthur Sze)의 시로부터 뛰어나왔다. ... 겔만은 그 가운데 맨 첫 번째 시를 보고 눈이 번쩍 뜨였다. 그 제목은 "양파처럼 겹겹이 쌓인 꿈"이었는데 우주 만물이 서로 엮어져 있다는 점을 노래한 것이었다.

The World of the quark has everthing to do
with a jaguar circling in the night

이 두 줄의 시구는 단순성으로부터 복잡성이 어찌 도출되는지에 대한 신비를 참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 겔만은 이를 보고 자기가 쓸 책의 제목을 TheQuarkAndTheJaguar로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 그는 자신이 너무 많이 알고 있다고 한탄했다. ... 이 와중에 가장 정확한 단어들만 선택하여 수많은 종이를 메워가야 한다는 것은 정말 악몽과도 같은 일이었다. 기껏 만들어 놓은 문장도 자신이 원하는 내용을 만족스럽게 드러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

언젠가 그는 비록 꾸며낸 것인 듯 하지만 노르웨이의 한 등대지기가 길고 긴 겨울밤 내내 수많은 책을 읽으면서 잘못된 곳마다 꼼꼼히 표시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어쩌면 그의 동료들도 책상을 치우고 앉아 이 책을 읽으면서 자기의 실수를 발견할 때마다 득의의 미소를 띨지도 모른다. ...


... 하지만 이런저런 결점에도 불구하고 그는 좋은 책을 펴냈다고 느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이 책을 스스로 써낸 것에 대하여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가 평생 이처럼 열심히 해본 일은 다시 없었다.


맺음말

겔만이 "쿼크와 재규어"를 마무리짓도록 하는 데에 도움을 주었던 편집자 제리 리온즈는 내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는 겔만이 하늘 아래 존재하는 모든 주제들에 대하여 여러 시간 동안 끊임없이 부드럽게 이어가는 이야기를 듣노라면 마치 이 세상이 온통 친절한 주석을 달고서 그의 앞에 등장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겔만이 이야기를 끝내고 자리를 뜨면 세상은 갑자기 전보다 훨씬 더 공허해진다. ...


겔만은 과학과 삶, 그리고 인생 자체가 처한 이와 같은 딜레마를 이 책의 첫머리에 인용한 그 자신의 말로써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연구를 하면서 우리는 언제나 진퇴양난에 처한다. 모델을 충분히 정밀하게 구성하지 못하여 중요한 물리현상을 놓칠 수 있는 반면, 너무 세밀하게 꾸미게 되면 가공의 존재를 만들고 종내 그것이 진짜 괴물로 둔갑하여 우리를 집어 삼켜버릴 수도 있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깊이 새기면서 항상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갈 따름이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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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08-03-20 08:0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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