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트워크 위에서 전염병 막기

너구리님이 쓰신 그림으로 이해하는 전염병 확산 매커니즘을 보고 전염병의 확산을 막는 방법에 대한 연구결과들을 설명해본다.

앞선 글에서 설명했고, 너구리님도 그림으로 보여주셨듯이, 질병 모델에 네트워크라는 요소를 넣으면 허브가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이웃이 많기 때문에 병에 걸릴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고 (대략 이웃의 수에 비례하여 병에 걸릴 확률이 높아지게 된다,) 이렇게 병에 걸리게 된 허브는 또 많은 이웃에게 병을 퍼뜨린다. 이런 허브의 효과로 인해, 허브가 무시할 수 없을 만크 존재하는 네트워크에서는 전염병을 막기가 매우 힘들어진다.

그럼 우리가 손쓸 방법은 없는 것일까? 손이나 열심히 씻어야 하는 걸까?

허브가 전염병을 퍼뜨리는 데 몹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이해한 연구자들은 곧, 반대로 허브가 병에 걸리지 않도록 막기만 하면 병을 효율적으로 막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1. 전염병이 퍼져나가는 상황에서 제한된 수의 격리나 예방 접종만이 가능한 상황을 가정해보자. 만약 되는 대로 사람들을 격리/접종 한다면 전염병은 별 문제 없이 전체 네트워크로 퍼져 나간다. 반면에, 허브들을 골라내어 이웃이 많은 허브부터 격리/접종을 하면 전염병은 확산되지 못한채 사라진다.

사실 이 결과는 네트워크 과학의 초기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논문인 "Error and attack tolerance of complex networks"라는 논문2의 결과와 일맥상통한다. 이 논문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척도없는 네트워크의 구조는 임의적으로 노드를 망가뜨리는 'error'에는 대단히 강하지만, 허브를 차례대로 망가뜨리는 'attack'에는 너무나 쉽게 망가진다. 말하자면, 척도없는 네트워크에서는 허브가 네트워크를 하나로 묶어주고 있기때문에 이 허브들이 온전하게 살아남아 있는 한은 네트워크의 구조가 보존된다는 것이다.

전염병 동역학의 맥락에서 이 결과를 다시 해석해보자. 임의적으로 사람들을 격리시켜 네트워크에서 제거한다면, 허브들은 남아 네트워크를 잘 묶어주고 있을 것이므로 전염병은 여전히 잘 퍼질 수 있다. 네트워크에서 허브부터 제거한다면, 네트워크의 구조는 쉽게 망가지고, 전염병은 더 이상 퍼질 수 없게 된다. (이 모든 결과들은 네트워크의 percolation 성질과 연결되어 있다.)

실현되기는 매우 어려워보이지만, 이론적으로는 재미있는 또다른 가능성은 위험한 전염병과 매우 비슷한 사촌 전염병을 위험한 전염병보다 먼저 퍼뜨리는 것이다. (예방 접종과의 차이점은, 구지 사람들이 주사를 맞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과 자칫 잘못하면 변종이 진화하여 엄청난 피해를 줄 수 있는 위험성이 추가된다는 점이다.) 이때, 사촌은 위험하지 않으면서도, 사람의 면역 시스템이 보기에는 충분히 비슷하여 위험한 전염병에 대한 면역을 생성해주어야 한다 (교차 면역, cross immunity)3. 만약에 이런 이상적인 상황이 가능하다면, 네트워크 위에서 위험한 질병이 퍼져나가기에 적당한 경로 (주로 허브들) 를 정확히 그 사촌이 먼저 퍼져나가 면역을 생성시키게 되므로 전염병을 효율적으로 막을 수 있게 된다4



  1. Romualdo Pastor-Satorras, Alessandro Vespignani, Immunization of complex networks, Phys. Rev. E 65, 036104 (2002) ; Zoltan Dezso, Albert-László Barabási, Halting viruses in scale-free networks, Phys. Rev. E 65, 055103 (2002) [Back]
  2. Réka Albert, Hawoong Jeong & Albert-László Barabási, Error and attack tolerance of complex networks, Nature 406, 378-382 (2000) [Back]
  3. 교차면역은 자연에서 흔히 관찰되는데, 한가지 흥미로운 예는 나병 (leprosy) 과 결핵 (tuberculosis) 이다. 전혀 달라보이는 두 병이지만, 병을 일으키는 박테리아는 Mycobacterium genus에 속하는 친척이다. 나병은 11세기부터 13세기까지 서유럽의 풍토병이었지만, 17,18세기에 결핵이 유행하는 것과 동시에 거의 자취를 감추었는데, 이 현상이 두 병 사이의 교차 면역 때문이라는 가설이 꽤 설득력이 있다. [Back]
  4. M. E. J. Newman, Threshold effects for two pathogens spreading on a network, Phys. Rev. Lett. 95, 108701 (2005) - 첫번째 병이 퍼져나가고 난 뒤에 남게 되는 면역이 형성되지 않은 네트워크 구조를 수학적으로 풀었다. 꽤 아름다운 논문. [Back]
2009/05/05 11:31 2009/05/05 11:31

H1N1 독감

먼저, 이번 독감에 대해 유익한 글을 올려주고 계신 블로그들을 소개한다. (특히 crete님의 활약이 눈부시다. ㅎㅎ)

Be Alert

전염병이 퍼지는데 매우 중요한 것은 인구 집단의 크기이다. 많은 전염병들은 'crowd disease' 라고도 불린다. 전염병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보통 일정 크기 이상의 큰 집단 (끊임없는 새로운 숙주의 보충) 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농업은 이런 큰 규모의 집단을 만들어 냄과 동시에 다양한 전염병을 인간에게 가져왔는데, 이에 대해 Arno Karlen은 전염병의 문화사 (Man and Microbes)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농업은 인간에게 너무도 많은 새로운 병원균을 가져다주어서 인류가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다. (p66, 전염병의 문화사)

큰 도시가 형성되면서 전염병은 더욱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그 발생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도시는 전염병의 온상이었다. 사실 마을이 큰 도시가 되고서야 대규모 죽음이 인간사의 일상적인 부분이 되었다. ... 수백만 년 동안 인간의 주요 사망 원인은 사고와 부상이었다. 그러다가 영구적인 농경과 촌락 생활 덕분에 질병으로 인한 죽음이 더욱 흔하게 되었다. (p80, 전염병의 문화사)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더욱 더 많은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살 수 있도록 만들었다. 현대의 도시에는 과거와 비교할때 훨씬 많은 사람들이 같은 공간을 공유하며 살고 있다. 게다가 발전된 항공망은 수많은 사람들을 한 도시에서 또 다른 도시로 매 시간 운반하고 있다. 과거의 세계가 약하게 연결된 격자 구조였다면, 현재의 세계는 강하게 연결된 작은 세상 네트워크 (small-world network) 이다. 스페인 독감이 돌았던 1918년이 세계적인 항공망이 갖추어지기 전이라는 것을 떠올려보면, 항공망으로 연결된 현재의 세계가 처한 위험은 비교할 수 없이 커 보인다. 1918년의 독감도 전쟁으로 인해 대량으로 수송된 군인들에의해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네트워크 이론은 여기에 더해 또 하나의 어두운 전망을 내놓았다. 네트워크 구조를 크게 고려하지 않았던 전통적인 전염 모델에는 언제나 0이 아닌 전염 한계치 (epidemic threshold) 가 존재한다. 전염 한계치는 전염병이 전체 집단에 퍼질 수 있는지 아니면 매우 적은 수의 사람들만을 감염시킨 뒤 사라질 것인지를 결정하는 기준인데, 전염병의 전염율과 치료율의 비가 이 전염 한계치보다 높으면 전염병이 전체 집단으로 퍼지게 된다. 반대로 그 비율이 전염 한계치에 도달하지 못하면 전염병은 사라지게 된다. 따라서 전염율을 낮추거나 치료율을 증가시킴으로써 전염병을 없애는 것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그런데 허브가 충분히 많이 존재하는 척도없는 (scale-free) 네트워크에서 전염병이 퍼질 경우, 네트워크의 크기가 커짐에 따라 전염 한계치는 0으로 수렴한다1. 다시 말해 무슨 수를 써도 전염병의 전염력를 전염 한계치 아래로 줄이기가 힘들어진다.

이런 현상이 생기는 이유는 큰 허브일 수록 효과적으로 병을 전파하는 매개자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허브는 많은 링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감염될 확률이 자연히 높아지며, 감염된 허브는 수많은 이웃들에게 병을 전파시키게 된다. 문제는, 세상에 존재하는 대다수의 네트워크들이 척도없는 네트워크, 혹은 최소한 많은 허브가 존재하는 네트워크라는 것이다. 공항 사이의 항공망2과 성관계 네트워크3 가 중요한 예이다. 독감이 퍼져나가는 네트워크는 고정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그 구조를 확실하게 알기도 어렵지만, 인구조사원과 같은 허브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SARS의 경우에도 'super spreader'라 불리는 소수의 환자들이 매우 많은 사람들을 감염시켰다.

Don't panic

전염병이 퍼지기에 좋은 네트워크 구조를 지속적으로 구축하고 있음에도, 선진국에서 전염병에 걸려 죽는 사람의 수는 매우 드물다. 그 이유는 인류가 백신을 발명하고, 훌륭한 감시 & 치료 체계를 만들고, 상하수도 시스템을 구축하고, 훌륭한 위생상태를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노력들은 전염병이 새로운 숙주로 옮겨 가기 힘들게 만들어 전염병을 효과적으로 차단해왔다.

작년에 병원체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라는 글을 통해 폴 이왈드의 주장을 소개한 적이 있는데, 다시 요약해본다.

  1. 병원체는 지속적으로 돌연변이를 일으키며, 이렇게 생겨난 수많은 변종들은 서로 경쟁하며 진화한다.
  2. 병원체에게 가해지는 두 가지 주요 선택압은 숙주 안에서 다른 병원체들과의 경쟁과 다른 숙주로의 전염이라는 경쟁에서 비롯된다.
  3. 숙주 안에서 이루어지는 경쟁에서는 치명적인 (숙주로부터 최대한 많은 것을 얻어내는) 병원체가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
  4. 따라서 병원체가 숙주를 죽이거나 심하게 앓게 만들더라도 다른 숙주로의 이동이 용이하다면 병원체는 치명적인 방향으로 진화한다 (수인성 전염병이나 모기가 매개하는 전염병등).
  5. 반면에 병원체가 숙주를 죽이거나 심하게 앓게 만들 경우 다른 숙주로의 이동이 힘들어진다면 병원체의 독성은 약화된다.

그는 이 논리를 바탕으로 1918년과 같은 대유행이 다시 일어나기 힘들다고 주장한다. 주장의 골자는 1918년의 독감이 특수한 상황에서 진화한, 특별히 독성이 강한 바이러스였다는 것이다. 그 특수한 상황이란 다름 아닌 제1차 세계 대전이었다. 1918년의 바이러스는 전선에 위치한 집단 병동 - 바이러스가 바로 옆의 환자에게 너무나 쉽게 옮겨 갈 수 있는 - 에서 처음 등장했기 때문에 강한 살상력을 가진 바이러스로 진화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전쟁이 사회의 많은 기능을 마비시켰기 때문에 효과적으로 유행을 차단하는 것까지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반대로, 사회가 잘 기능하여 심하게 앓는 환자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병을 옮기는 것을 차단할 수 있다면 전염병의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주장을 H1N1 독감에 적용해보면, 이번 독감이 그렇게 위험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세계 대전과 집단 병동이라는 여건이 마련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과거의 교훈때문에 많은 나라들이 적극적으로 이에 대처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를 보아도 환자들이 확인되는 즉시 치료를 받고 격리되고 있다. 게다가 crete님이 지적하신 것처럼 지금은 계절과 기온상 독감이 쉽게 퍼지기 힘든 계절이기까지 하다. crete님이 멕시코와 다른 나라의 사망률의 차이에 대한 포스팅에서 멕시코와 미국에서 발견된 바이러스가 유전적으로 일치한다고 말씀해주시긴 했지만, 현재까지의 사망자 발생 패턴은 이 이론을 뒷받침하는 것처럼 보인다4.

But, still.

하지만, 그렇다고 마음을 놓아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위에서 소개한 주장은 설득력은 있지만, 검증은 힘들다. 생각지 못했던 다른 시나리오가 현실이 되어 우리의 기대를 배반할 가능성도 있다. 또한, 처음에 설명한 것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구조'는 언제든지 전염병의 전파를 도와줄 수 있기때문에, 우리의 방심을 틈타 치명적으로 진화한 병원체가 전세계를 휩쓰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 게다가 초기 진화에 실패하여 환자의 수가 급격히 증가하면 병원들이 바이러스의 독성을 증가시키는 허브의 역할을 하는 것도 가능할 뿐만 아니라, 엄청난 사회적 비용이 들어가게 된다. 그러므로, 각 국의 정부와 개개인들 모두 전염병 확산의 초기 단계에서 가능한 노력을 기울여 확산을 막는 것이 좋다.

결론은, "손을 잘 씻읍시다". ㅎㅎ


  1. Romualdo Pastor-Satorras and Alessandro Vespignani, Epidemic Spreading in Scale-Free Networks, PRL 86, 3200 (2001) free download (arxiv) [Back]
  2. R. Guimerà, S. Mossa, A. Turtschi, and L. A. N. Amaral, The worldwide air transportation network: Anomalous centrality, community structure, and cities' global roles, PNAS 102, 7794 (2005) ; Vittoria Colizza, Alain Barrat, Marc Barthélemy, and Alessandro Vespignani, The role of the airline transportation network in the prediction and predictability of global epidemics, PNAS 103, 2015 (2006) [Back]
  3. Fredrik Liljeros, Christofer R. Edling, Luís A. Nunes Amaral, H. Eugene Stanley & Yvonne Åberg, The web of human sexual contacts, Nature 411, 907 (2001) free download (arxiv) [Back]
  4. 처음 발병한 멕시코에서는 꽤 치명적이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병이 전파됨에 따라서 독성이 감소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자세한 연구결과들을 찾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crete님이 배제한 두번째 가능성이 얼마나 말이 되는지는 아직 알지 못한다. [Back]
2009/05/03 13:59 2009/05/03 13:59

병원체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김우재:산모기와 집모기에 의한 가려움증의 차이에 대하여를 읽고 씁니다.

우재님이 '숙주와 기생체의 상호작용이 오래되면 오래될 수록, 숙주에게 독성이 강한 기생체의 비율이 줄어들게 된다'라는, 전염병학의 통념이 최근에 도전을 받고 있다는 언급을 하셨습니다. 마침 저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제이고, 게다가 지금 제가 읽고 있는 책도 관계가 깊어 이에 대해 조금 써 보려고 합니다 (더 정확하고 자세한 정보는 전문가이신 byontae님의 블로그에서 ㅎㅎ).

전염병 시대 - 8점
폴 W. 이왈드 지음, 이충 옮김/소소

이 책의 도입부에서는 왜 이러한 통념이 틀렸는지를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통념은 '숙주에게 심한 해를 입히거나 죽이게 되면 전파가 힘들어지므로 독성이 약해지는 방향으로 공진화한다'는 생각을 깔고 있는데, 조금 깊이 들여다보면 이런 생각이 상당히 순진하다는 걸 깨달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어떤 선택압이 병원체에게 작용하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편견을 버리고 실제 병원체가 맞닥뜨리는 상황에 대해 생각해봐야 합니다.

두 종류의 시험

The strategic options can be envisioned as a competition that is played out in two contests. The first contest occurs within the host, where the favored competitors are those that most effectively use the host as food for their own reproduction. The second contest is played out in the transmission of pathogens to new hosts; those pathogens hat have been successful at growing within hosts are now in competition to reach the remaining uninfected members of the society. ...

These two contests require different talents. ...

병원체는 대략 나눠봤을때, '숙주 안에서 이루어지는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고, 이후 '다른 숙주로의 전파'라는 시험까지 통과해야만 비로소 성공한 병원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두 시험이 요구하는 자질은 다릅니다. 첫번째 시험은 보통 활발한 복제능력, 숙주의 자원을 최대한 쥐어짜는 능력을 요구하는 반면, 두번째 시험은 보통 숙주가 다른 숙주를 감염시킬 수 있도록 만드는 능력을 요구합니다. 간단한 예로, 어떤 병원체의 변종이 숙주를 최대한 이용하는데 성공하여 많은 자손을 남기고 다른 병원체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했다고 하더라도, 이 과정에서 숙주를 죽게 만들거나 가만히 누워있게 만들어 다른 숙주로의 이동이 불가능해졌다면, 이 변종은 완벽한 실패로 끝난 것입니다. 역으로 아무리 다른 숙주로 잘 옮겨가는 능력을 가졌다고 해도 숙주안에서 다른 변종에게 도태된다면 이 역시 실패작입니다.

첫번째로 든 상황은 시간이 지날수록 병원체의 독성이 약해진다는 통념을 지지하는 논리로 보입니다. 하지만, 뒤집어 생각해보면, 병원체가 숙주를 죽이거나 심하게 앓게 만들더라도 다른 숙주로 이동할 방법만 존재한다면 병원체의 입장에서는 숙주의 건강을 고려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도 얻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인간의 역사에서 맹위를 떨쳤던 병들은 대부분 이렇게 숙주가 죽거나 심하게 앓아도 다른 숙주로 이동할 방법을 확보한 병원체가 일으킨 병들입니다.

의학이 일궈낸 그 어떤 진보도 상하수도 시스템의 정비만큼 많은 목숨을 살리지는 못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물을 통해 전파되는 수인성 전염병은 많은 사람들을 죽여왔으며, 지금도 개발도상국에서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있습니다. (개발도상국의 사망 원인 4위가 설사입니다).

Cholera

가장 유명한 병은 콜레라인데, 20세기 중반까지도 맹위를 떨치며 한 번 발생할때마다 수천에서 수백만의 사람들을 죽이곤 했습니다. 콜레라에 걸리면 콜레라균이 다량 함유된 설사를 계속해서 하게 되어 탈수를 일으킵니다. 설사로 오염된 물은 몸 밖으로 나온 콜레라균을 다른 숙주에게로 운반해줍니다. 한 명의 설사로 오염된 물은 수만 명을 감염시킬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숙주가 살아남았는지는 콜레라균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숙주가 최대한 많은 설사를 생산하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따라서 콜레라균은 치명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폴 이왈드는 2007년 TED talk에서 이러한 논리를 뒷받침하는 강력한 증거들을 제시해줍니다.

그의 설명처럼, 수인성 전염병의 독성을 낮추는 방향으로 선택압이 작용하기 위해서는 깨끗한 물 - 전염병을 매개하는 고리를 끊는 것 - 이 가장 중요합니다.

모기

모기나 다른 살아있는 매개체의 경우에도 비슷한 논리가 성립합니다. 숙주가 심하게 아파서 아무와도 만나지 못한채 누워만 있더라도, 모기가 쉽게 병원체를 옮겨줄 수 있습니다. 더 나쁜 것은, 아파서 앓아 누운 환자가 모기에게는 더 쉬운 사냥감이 된다는 것입니다. 즉, 숙주가 더 심하게 앓게 만드는 방향의 선택압이 작용할 수도 있게 됩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매년 백 만명 이상을 죽이는 치명적인 질병인 말라리아입니다. 말라리아 역시 매개체인 모기를 막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해결책일 수 밖에 없습니다.

병원성 전염병

병원에서는 역설적이게도 간호사나 의사들이 병원체를 옮기는 매개체가 될 수 있습니다. 병원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철저한 위생상태를 유지한다면 별 문제가 없겠지만, 실제로 모두가 청결함을 완벽하게 유지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간호사나 의사가 일단 매개체로 기능하기 시작하면, 모기가 옮기는 병의 경우처럼 병원체는 숙주의 건강에 신경 쓸 이유가 줄어들게 되고, 따라서 치명적인 방향으로 진화하기 쉬워집니다.

천연두, 결핵

천연두나 결핵은 조금 다른 경우입니다. 이들은 숙주이외의 매개체가 존재하여 병원체를 운반해주기 보다는 자신들의 터프함으로 건강한 숙주가 자신을 흡입할 때까지 숙주의 몸 밖에서 버팁니다. 천연두의 경우가 특히 강하죠 (영화로 만들어질만 하죠. ~_~).

No one knows exactly how long it can last in the external environment. In one study smallpox scabs were stored in an envelope that was left on a shelf in a lab cabinet. By sampling the scabs periodically, the researchers demonstrated viable viruses for thirteen years. They could not continue the study because thirteen years of testing had used up all the viruses in the envelope.

... Such durability explains why American Indians in the colonies of New York and Pennsylvania were decimated by smallpox. Lasting for a few days or weeks on the infamous smallpox-laden blankets distributed to American Indians from a colonial outpost would be difficult for most viruses, but not for a virus that could last more than thirteen years on a lab shelf. There were even more morbid consequences of this durability. In 1757, after French fores took over Fort William Henry in northeastern New York, their Indian allies began digging up English graves. They got the scalps they were after, but they also apparently retrieved smallpox viruses that were lying in wait in the corpses of those who had died from the disease.

결핵균은 몸 밖에서 수 주에서 몇 달 정도까지 살 수 있으며, 폴 이왈드는 이것이 바로 리팜핀 같은 결핵약이 등장하기 전에 결핵이 천연두 바로 아래에 위치한 치명적인 질병이었던 이유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편, 감기를 일으키는 병원체는 몸 밖에서 보통 몇 시간밖에 버티지 못한다고 합니다.

조류독감은 얼마나 위험할까

폴 이왈드는 이런 논의를 끌고 나가 조금 위험한(?) 주장 - '앞으로는 1918년의 스페인 독감같은 치명적인 독감의 대유행이 없을 것이다' - 을 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시간 나는대로 쓰도록 하겠습니다. ㅎㅎ

2008/08/06 12:37 2008/08/06 12:37

미국 쇠고기 얼마나 위험한가 - 2


이정환:미국 쇠고기와 언론의 여론 조작을 보고 미국 쇠고기 얼마나 위험한가라는 글을 썼습니다. 뒤이어 올라온 인간 광우병에 대한 짧은 언급이라는 글을 보고 저도 다시 씁니다.

먼저 제가 썼던 글의 논지를 다시 정리하겠습니다.

  1. 광우병에 걸린 수만 마리의 소가 유통된 영국에서도 vCJD의 발병은 극히 미미한 수준입니다.
  2. 비슷한 질병인 쿠루의 사례에서 보면, 지금 보이는 데이터만 가지고 vCJD의 파괴력을 속단하기는 이릅니다.
  3. 하지만 쿠루의 경우를 보면 잠복기가 매우 긴 사람들의 비율이 그렇게 높지 않았으며, 따라서 다른 근거가 없는 한, 미래에 일어날 vCJD의 재유행을 심하게 걱정해야 할 이유는 없어 보입니다.
  4. 설사 영국에서 계속 살아 왔더라도 인간광우병에 걸릴 확률은 그렇게 높지 않아 보입니다.
  5. 따라서, 미국에서 인간광우병에 걸릴 확률도 거의 '0'이며, 한국에서 미국 쇠고기를 통한 인간광우병을 걱정하는 것은 더더욱 기우에 가깝다고 봅니다.

예방 우선의 원칙

정태인님의 정리를 보았지만 저에게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이 문제는 현재의 과학 수준으로 증명 불가능합니다. 이럴 때 건강과 환경 정책은 '예방우선의 원칙'을 적용합니다. 즉 먼저 규제하는 것이죠. 그러나 미국식 FTA는 증명하지 못하면 수입하라는 겁니다. 어떻게든 FTA를 맺으려고(별 뚜렷한 이유도 없이) 다른 나라는 감수하지 않는 위험을 축소하려는 게 문제입니다. 잘 모르겠으면 우선 금지시키는 게 맞겠지요. 어떤 규제든 그것이 필요불가결함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라', '못하면 수입규제'라고 하는 것이 무역/경제를 생명보다 우위에 놓는 미국식 FTA의 기본 발상입니다. --정태인

무언가를 '증명'하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예를 들어, 광우병에 걸린 소고기를 인간이 먹으면 vCJD에 걸릴 수 있다는 가설은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믿고 있지만, 아직도 증명된 사실이 아닙니다.

'예방 우선의 원칙'은 그럴듯하지만, 그 자체로는 공허합니다. 위험의 정도에 대해 완벽한 무지가 존재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대부분의 경우, 대강의 추정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그 추정을 바탕으로 적절한 선에서 예방을 할 수 있습니다. 균형추는 물론 '예방'쪽으로 더 쏠려야 합니다만, 지나치게 예방을 강조하면 엄청난 비용이 허공으로 사라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공항을 통해 세계 각국에서 무서운 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입국할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예방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특별한 전염병 위험이 없는데도 입국하는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심각한 검사를 하고 방역작업을 하는 것은 삽질입니다. 또다른 예로, "한국에서 테러가 일어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이슬람 교도들의 입국을 전면 금지하자"는 정책은 어떨까요? 종교차별 문제를 뒤로 밀어놓더라도, 위험에 비해 너무나 큰 비용을 부담하게 하는 한심한 정책입니다. 이렇게 별로 큰 위험이 아닌데도 '예방 우선의 원칙'을 내세워 막대한 비용을 들이는 건 넌센스입니다.

완전히 무지한 경우에는 예방 우선의 원칙을 적용할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위험도를 대강이라도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방은 이렇게 추정된 위험도를 바탕으로 적절한 안전선을 정해 이루어져야 합니다. 완벽한 예방만을 강조할 경우 지나치게 많은 비용을 지불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비용은 또다른 사람들의 생명과 직결될 수 있습니다.

광우병의 위험

결국 문제의 핵심은 '미국 쇠고기가 가진 광우병 위험이 얼마나 되는가'입니다. 증거로 뒷받침되는 '추정'을 제시하지 않은 채로, '증명 불가능하니 예방우선의 원칙을 적용해서 수입하지 말자'고 주장하는 것은 교묘한 수사이며 옳지 않습니다. 이미 지난글에서 광우병의 위험이 거의 없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제가 든 근거나 주장중에 특별히 반박이 이루어진 부분은 없지만 추가 자료와 함께 다시 한번 정리해봅니다.

우리에게는 광우병에 대한 많은 데이터가 있으며, 이 데이터를 통해 어느정도 위험에 대한 추정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저번 글에서 영국의 예를 통해 보여드렸던 것처럼, (30년 이상의 긴 잠복기를 가지는 또다른 창궐이 없다면) 그 위험은 너무나도 작습니다. 아마 번개에 맞을 확률조차도 인간광우병에 걸릴 확률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클 것입니다. 게다가 잠복기가 매우 길어 나중에 대단위의 창궐이 일어날 것이라는 주장은 근거가 미약합니다. 오히려 그 반대를 지지하는 증거들이 존재합니다. 첫째로, 쿠루의 경우, 잠복기가 매우 긴 사람들의 비율이 미미합니다. 둘째, 광우병의 잠복기는 평균 5년인 반면, 인간광우병의 추정 잠복기는 12~15년으로 이미 소의 2배에서 3배에 이릅니다. 셋째로, vCJD환자의 수가 다시 증가하려는 경향이 아직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만일 지금 바로 또다른 창궐이 일어난다고 해도, 30년 이상의 잠복기를 가졌다고 가정해야 합니다.

광우병의 위험이 매우 작다는 것은 그 전에 이루어졌던 동물실험을 통해서도 지지됩니다.

왜 종간 장벽이 있어서 프라이온이 다른 생물종 사이에는 잘 전염되지 않고 같은 종 사이에서는 쉽게 전염될까? 왜 입으로 섭취할 경우에는 잘 전염되지 않지만, 뇌에 직접 주사를 하면 더 쉽게 전염될까? --p. 333

... 뇌 추출물을 뇌로 직접 투여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양의 스크래피병을 다른 종에게 옮기기 아주 어렵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그 당시로서는 지나치게 조심스러운 행동으로 보였다. 엄청난 양이 아니면 음식을 통해 사람의 프라이온으로 원숭이를 감염시키는 것도 불가능한데 소와 사람의 차이는 원숭이와 사람간의 차이보다 훨씬 더 심하다. 뇌에 주사를 하는 경우가 섭취를 통한 경우보다 감염의 위험도가 약 1억 배나 더 높다고 추정되었다. --p. 337, Matt Ridley, Genome

이렇게, 저는 프리온병이 이종간에서, 입으로 섭취하여 전염되기는 정말 어렵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정환님이 쓰신

0.001g만으로도 인간 광우병을 옮길 수 있다.

라는 발언의 근거자료가 궁금합니다. '옮길 수 있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확률'입니다. 만약 저렇게 적은 양을 섭취하는 것만으로도 인간광우병에 쉽게 걸린다면, 영국은 이미 세계사에서 사라졌을 것입니다.

광우병이 걸린 소 한 마리는 5만5천마리의 소에 광우병을 감염시킬 수 있다. --이정환

이 문장도 의문입니다. 광우병에 걸린 소가 다른 소를 감염시킬 수 있는 방법은 자신을 희생하여 다른 소가 먹는 사료가 되는 경우 뿐이며, 이는 이미 90년대 초에 모두 금지되었습니다. 따라서 이건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 위험을 과장하여 공포를 조장하는 발언입니다.

자연적으로 발병하는 광우병

인간의 경우, 전에 썼던 것처럼, CJD라는 희귀병은 저절로 발병할 수 있습니다. 이 병은 백만 명당 한 명꼴로 몹시 희귀하지만, 영국에서조차 vCJD보다는 훨씬 흔합니다. 소의 경우에도 광우병과 똑같은 증세를 보이는 병이 옛날에도 관찰된 일이 있으며, 소라고 이런 형태의 광우병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습니다.

광우병의 기원에 대해서는 두 가지 유력한 이론이 존재합니다. 첫번째는 양에 존재하는 프리온병인 스크래피가 사료로 쓰이게 되어 소로 옮겨졌다는 가설이고, 두번째는 자연적으로 광우병에 걸린 소가 사료로 쓰여 광우병이 퍼지게 되었다는 가설입니다. 종간 감염이 매우 힘들다는 것을 볼 때, 개인적으로는 두 번째 가설이 더 유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가설이 옳을 경우, 미국에서 발병한 광우병은 이러한 자연적 발병일 수도 있습니다. 미국에서 키우는 소는 대략 1억 마리에 이릅니다. 인간의 경우보다 소의 경우에 이런 자연적 광우병 발병확률이 1/100정도라고 낮추어 가정해도 1억 마리 중에 한 마리 정도는 자연적인 광우병에 걸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자기네 소를 잘 먹고 있는 미국과 영국

지난 기사를 내보내고 많이 받았던 질문은 역시 미국 사람들 다 먹는 쇠고기를 먹지 못하는 이유가 뭐냐는 것. 박 국장은 "영국에서는 광우병으로 160명 이상이 죽었는데 여전히 영국산 쇠고기를 먹는다"고 지적했다. 자기네 나라 쇠고기니까 어쩔 수 없이 먹는다는 이야기다.

사실 미국 사람들이 다 잘 먹고 있다는 주장은 매우 강력한 논거이며, '자기네 나라 쇠고기니까 어쩔 수 없이 먹는다'는 건 이에 비해 너무나 초라한 논거입니다. 영국인들이 영국산 쇠고기를 먹는 이유는, 지금까지 광우병에 걸렸다고 밝혀진 전체 소의 98%인 183,823마리의 소가 영국소임에도, 광우병으로 12년 동안 160명밖에 죽지 않았기 때문이며, 12년 동안 수백만명을 죽인 다른 병이나 다른 사인들에 비하면 그 위험성이 턱없이 작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18만 마리의 광우병 사례를 가지고 있는 영국과 비교할때, 단 2마리의 광우병 사례를 가진 미국 소를 통한 광우병을 걱정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듭니다.

영국이나 미국을 비롯해 광우병 위험 국가에서 쇠고기를 수입하지 않는 것은 세계적인 상식이라는 이야기다.

사실 인간광우병은 매우 긴 잠복기, 병의 예후, 그리고 소가 소를 먹어서 걸린 병이라는 으스스함등으로 인해, 실제 위험에 비해 터무니없을 정도의 공포를 유발시키는 병입니다. 다른 나라들이 광우병 위험 국가에서 쇠고기를 수입하지 않는다는 건 그러한 비합리적 공포를 보여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상황은 조금 다르지만 조류 독감이 발생해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우리나라 닭고기를 먹는 것과 마찬가지다.

조류독감에 걸린 닭이라도 70도 이상의 온도로 몇 분정도 익혀먹으면 위험이 없습니다. 게다가 잠복기가 긴 것도 아니기 때문에 조류독감이 발생해도 얼마든지 걱정없이 닭고기를 먹을 수 있습니다. 광우병의 경우에도 워낙 확률이 작기 때문에 거의 위험 없이 먹을 수 있습니다. 두 경우 모두, 어쩔 수 없이 먹는다기보다는 실제로 그만큼 안전하기 때문에 먹는 것입니다. 과연 최고의 생물학자들을 보유한 미국이나 영국에서, 위험한 쇠고기를 국민들이 어쩔 수 없이 먹도록 만들까요? 적어도 18만 마리의 소가 감염된 것으로 판명되었고, 40만 마리에 이르는 소가 아무것도 모른 상태에서 사람들의 식탁에 올라갔고, 4백만 마리가 넘는 소를 도살했으며, 160건 정도의 vCJD 발병사례가 있는 영국에 사는 매트 리들리는 영국이 취했던 조치들이 '과했다'고 까지 말합니다.

추가로 10만 마리의 소를 도살할 것을 명하였다. 이것은 너무 지나친 행위로, 마치 마굿간에 빗장을 건 후 다시 한 번 문을 걸어 잠그는 정도가 아니라 그 바깥에서 희생양을 올리는 제사를 지내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p. 338, Matt Ridley, Genome.

적어도 18만 마리의 소가 감염된 것으로 판명되었고, 40만 마리에 이르는 소가 아무것도 모른 상태에서 사람들의 식탁에 올라갔고, 4백만 마리가 넘는 소를 도살했으며, 160건 정도의 vCJD 발병사례가 있는 영국에 사는 사람들은 영국 쇠고기를 잘 먹고 있습니다. 그런데 고작 2마리의 소, 자연적인 발병일 수도 있는, 가 발견된 미국의 소고기가 얼마나 위험할까요?

참고로 미국은 약 20년전부터 광우병을 모니터링해 왔습니다. 전에 링크한 모기불통신의 광우병 검사라는 글을 보면 미국에서 광우병 검사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 수 있습니다.

2004 년에 미국농림부에서 내놓은 자료 에 따르면 268,000 마리를 샘플링해서 검사하면 천만마리중에 한마리가 광우병에 걸렸더라도 99% 의 신뢰도로 잡아낼 수 있다고 하는군요. ("Under the enhanced program, using statistically geographic modeling, sampling some 268,000 animals would allow for the detection of BSE at a rate of 1 positive in 10 million adult cattle with a 99 percent confidence level. In other words, the enhanced program could detect BSE even if there were only five positive animals in the entire country.")

당신의 가족에게도 먹일 수 있는가?

물론입니다. 고기를 먹으면서 광우병을 걱정하는 것보다는 고기가 상했을지를 걱정하는게 뱅만배 실용적이고, 광우병을 걱정하기보다는 비만을 걱정하는게 뱅만배 실용적입니다. vCJD를 걱정하기보다는 차라리 CJD를 걱정하는게 더 합리적이라고 봅니다. 미국과 캐나다는 물론이고, 미국보다 수백배 많은 소가 광우병으로 죽은 프랑스, 독일등지에서도 소고기를 맛있게 먹었으며, 또 가더라도 거부감 없이 쇠고기를 먹을 것입니다.

결론

마지막으로 매트 리들리의 글을 좀 길게 인용합니다. 광우병의 위험이 절정이었던 1999년 즈음에 영국에서, 영국사람이 쓴 글입니다.

1988년 7월에 이르러서는 반추동물에게 사료를 주는 것이 법으로 금지되었다. ... 1988년 8월에 이르러 사우스우드 위원회는 광우병에 감염된 가축들은 모두 없애버려 먹이사슬에 들어오지 못하게 법률을 제정할 것을 권고하였다. ... 소의 뇌가 사람의 먹이사슬에 들어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특정 소내장 금지법이 1년 후에 선포되었고, 1990년에는 송아지의 경우에도 금지되었다. 이 법의 시행이 좀더 빨리 이루어질수도 있었지만, 뇌 추출물을 뇌로 직접 투여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양의 스크래피병을 다른 종에게 옮기기 아주 어렵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그 당시로서는 지나치게 조심스러운 행동으로 보였다. 엄청난 양이 아니면 음식을 통해 사람의 프라이온으로 원숭이를 감염시키는 것도 불가능한데 소와 사람의 차이는 원숭이와 사람간의 차이보다 훨씬 더 심하다. 뇌에 주사를 하는 경우가 섭취를 통한 경우보다 감염의 위험도가 약 1억 배나 더 높다고 추정되었다. 이 단계에서 쇠고기를 먹는 게 안전하지 않다고 하면 오히려 무책임한 처사이다.

과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섭취에 의한 종간의 감염은 수십만 번의 동물 실험에서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을 정도이므로, 사실상 위험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실험대상은 바로 5000만명에 이르는 영국인이었다. 이렇게 큰 표본집단에서는 몇몇 경우가 생기는 것이 필연적이다. 정치가에게 안전상의 문제는 상대적인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것이다. 이들은 사람에서는 감염이 아주 드물게 나타나는 정도가 아니라 전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랬다. ...

1992년 이래로 태어난 가축들은 거의 광우병에 걸리지 않게 되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런데도 인간의 히스테리는 이제 막 시작되었다. 이제 정치가들에 의해 이루어진 결정들이 점차 광적인 상태로 바뀌었다. 내장금지법 덕분에 쇠고기는 최근 10년간의 그 어느 때보다 안전하게 먹을 수 있게 되었는데 사람들은 그제서야 쇠고기를 보이코트하기 시작했다.

... 영국에서는 수백만 명이 죽게 될 것이라는 황당한 예측이 심각하게 받아들여졌다. ...

영국 정부는 30개월 이상 된 쇠고기의 소비를 금지하는 쓸모 없는 추가적인 대응책을 내놓았고 이로 인해 대중적 경각심은 더욱 커져서 축산업 전체가 붕괴되었으며 도살될 가축들로 시스템이 마비되었다. ...


... 나의 경우에는 금지령이 확대된 이후로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소꼬리찜을 먹고 있다. 

--pp.336-339, Matt Ridley, Genome.

물론 매트 리들리씨는 (아직은?) 멀쩡하십니다.

참고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2007/10/23 01:04 2007/10/23 01:04

미국 쇠고기 얼마나 위험한가


이정환 님이 쓰신 미국 쇠고기와 언론의 여론 조작을 읽고 씁니다. 제가 잘 아는 분야가 아니라 주제넘게 쓰는 글이니 틀린 부분이 있으면 언제든지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이정환님은 '미국산 쇠고기 위험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라고 쓰셨지만, 저는 세상에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 위험같은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위험은 그 위험에 맞게 강조되어야 합니다. 전혀 위험하지 않은 위험을 과장하면 훨씬 더 중요한 일들에 쓰일 노력이 낭비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인간광우병은 치명적인가?

먼저, vCJD(variant Creutzfeldt-Jakob disease, 인간광우병)가 매우 치명적인 병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아직 마땅한 치료법이나 병의 진행을 늦추는 방법이 제시되지 못했으며 일단 발병하면 거의 확실하게 사망하게 됩니다. 최근에 RNA interference를 이용한 억제법이 제시되긴 했지만, 인간에게 적용되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입니다.

인간광우병에 걸릴 확률은?

vCJD에서 'v'라는 글자는 '변종'을 의미하며, CJD는 vCJD의 발견 이전에도 존재하던 병입니다. CJD는 대단히 희귀한 질병입니다. 백만 명당 한 명 꼴로, 60~65세 정도의 사람들게 보통 발병합니다. 백만 명당 한 명이라는 건, 로또 일등 확률에 근접하는 확률이며, 왠만한 병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은 확률입니다. 영국의 경우 CJD로 인해 매년 수십 명 정도의 사람들이 죽습니다. (The National Creutzfeldt-Jakob Disease Surveillance Unit - CJD Statistics)

현재까지의 데이터로만 본다면, vCJD는 희귀병인 CJD보다도 훨씬 드문 병입니다. 영국에서는 지금까지 18만 마리 이상의 (소)광우병 발병 사례가 있었습니다. 초기에는 광우병이 인간에게 전염될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기에 많은 소가 영국인들의 식탁에 올라왔음에도, 인간광우병에 걸려 죽은 사람의 수는 (확실하지 않은 사례를 포함하여) 12년 동안 고작 161명이며, 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았지만 아직 살아있는 사람의 수는 5명입니다. 그리고 이 숫자는 전세계적인 인간광우병 발병 사례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영국 이외의 지역에서 인간광우병으로 죽은 사람의 수는 손에 꼽습니다. 영국에서는 1988년 무렵부터 반추동물에서 나온 단백질을 반추동물에게 먹이지 않는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모기불:광우병 검사) 이 정책으로 광우병 발병 건수는 급격하게 줄었습니다. 이에 따라 조치시행 12년 후인 2000년 이후로 vCJD 발병건수도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습니다. (The National Creutzfeldt-Jakob Disease Surveillance Unit - CJD Statistics)

cjd.png

이렇게 vCJD는 엄청나게 걸리기 힘든 병이긴 하지만, 매우 비슷한 종류의 병인 '쿠루 (kuru)'가 50년에 이르는 긴 잠복기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별로 위험하지 않다'고 바로 결론을 내릴 수는 없습니다. (John Collinge et al., Kuru in the 21st century—an acquired human prion disease with very long incubation period, The Lancet) 그러나, 쿠루의 경우, 대부분의 환자는 12년 정도의, 그렇게 길지 않은 잠복기를 가지고 있었으며, 30년 이상의 잠복기를 가졌던 환자의 수는 미미했습니다. 따라서 딱히 다른 근거가 없다면 앞으로도 vCJD 환자의 수가 지금까지의 환자 수에 비해 폭발적으로 늘지는 않을 거라는 추측이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병의 잠복기가 길 수록 다른 병들에 비해 vCJD의 위험성은 줄어들며, 우리가 치료법을 찾아낼 확률도 높아집니다.

정리해 보겠습니다.

  1. 광우병에 걸린 수만 마리의 소가 유통된 영국에서도 vCJD의 발병은 극히 미미한 수준입니다.
  2. 비슷한 질병인 쿠루의 사례에서 보면, 지금 보이는 데이터만 가지고 vCJD의 파괴력을 속단하기는 이릅니다.
  3. 하지만 쿠루의 경우를 보면 잠복기가 매우 긴 사람들의 비율이 그렇게 높지 않았으며, 따라서 다른 근거가 없는 한, 미래에 일어날 vCJD의 재유행을 심하게 걱정해야 할 이유는 없어 보입니다.
  4. 설사 영국에서 계속 살아 왔더라도 인간광우병에 걸릴 확률은 그렇게 높지 않아 보입니다.
  5. 따라서, 미국에서 인간광우병에 걸릴 확률도 거의 '0'이며, 한국에서 미국 쇠고기를 통한 인간광우병을 걱정하는 것은 더더욱 기우에 가깝다고 봅니다.

다른 전염병들과의 비교

페스트와 조류독감같은 병들은 공기를 통해 인간에서 인간으로 전염되는 병입니다. 비행기를 통해 전세계가 연결된 현대의 좁은 세상에서는 대단히 위험할 수 있는 병들입니다. 매우 먼 지역까지 순식간에 병이 전파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네트워크 이론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이렇게 잘 연결된 세상에서는 전염병을 없애기가 매우 어려워집니다) 반면에, vCJD는 (식인 풍습이 없다면) 인간 -> 인간 전염이 불가능합니다. 즉, 병은 병의 원인에 노출된 사람들에게만 고립됩니다. 따라서 발견하기만 하면 상대적으로 쉽게 병을 억제할 수 있습니다. 쿠루의 경우, 죽은 사람의 뇌를 먹는 풍습이 병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식인 풍습이 없어지면서 병은 급속히 사라졌으며 현재는 완전히 사멸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광우병을 페스트나 조류독감에 비유하는 것은 부절적한 비교이며, 광우병의 위험을 지나치게 과장하는 위험한 비유라고 생각합니다.

결론

제가 가진 지식을 바탕으로 판단할 때, 한국에 수입된 미국 쇠고기가 광우병을 초래할 위험은 거의 없으며, "미국산 쇠고기가 국제적 기준에 비춰 현저한 위험이 있다는 것은 아직 없다"는 농림부 장관의 말에도 별 문제가 없다고 봅니다. 또한 광우병의 위험성은 축소, 은폐되기보다는 과장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2007/10/14 18:31 2007/10/14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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