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체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06 Aug 2008

김우재:산모기와 집모기에 의한 가려움증의 차이에 대하여를 읽고 씁니다.

우재님이 ‘숙주와 기생체의 상호작용이 오래되면 오래될 수록, 숙주에게 독성이 강한 기생체의 비율이 줄어들게 된다‘라는, 전염병학의 통념이 최근에 도전을 받고 있다는 언급을 하셨습니다. 마침 저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제이고, 게다가 지금 제가 읽고 있는 책도 관계가 깊어 이에 대해 조금 써 보려고 합니다 (더 정확하고 자세한 정보는 전문가이신 byontae님의 블로그에서 ㅎㅎ).

전염병 시대 - 8점
폴 W. 이왈드 지음, 이충 옮김/소소

이 책의 도입부에서는 왜 이러한 통념이 틀렸는지를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통념은 ‘숙주에게 심한 해를 입히거나 죽이게 되면 전파가 힘들어지므로 독성이 약해지는 방향으로 공진화한다’는 생각을 깔고 있는데, 조금 깊이 들여다보면 이런 생각이 상당히 순진하다는 걸 깨달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어떤 선택압이 병원체에게 작용하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편견을 버리고 실제 병원체가 맞닥뜨리는 상황에 대해 생각해봐야 합니다.

두 종류의 시험

The strategic options can be envisioned as a competition that is played out in two contests. The first contest occurs within the host, where the favored competitors are those that most effectively use the host as food for their own reproduction. The second contest is played out in the transmission of pathogens to new hosts; those pathogens hat have been successful at growing within hosts are now in competition to reach the remaining uninfected members of the society. …

These two contests require different talents. …

병원체는 대략 나눠봤을때, ‘숙주 안에서 이루어지는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고, 이후 ‘다른 숙주로의 전파’라는 시험까지 통과해야만 비로소 성공한 병원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두 시험이 요구하는 자질은 다릅니다. 첫번째 시험은 보통 활발한 복제능력, 숙주의 자원을 최대한 쥐어짜는 능력을 요구하는 반면, 두번째 시험은 보통 숙주가 다른 숙주를 감염시킬 수 있도록 만드는 능력을 요구합니다. 간단한 예로, 어떤 병원체의 변종이 숙주를 최대한 이용하는데 성공하여 많은 자손을 남기고 다른 병원체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했다고 하더라도, 이 과정에서 숙주를 죽게 만들거나 가만히 누워있게 만들어 다른 숙주로의 이동이 불가능해졌다면, 이 변종은 완벽한 실패로 끝난 것입니다. 역으로 아무리 다른 숙주로 잘 옮겨가는 능력을 가졌다고 해도 숙주안에서 다른 변종에게 도태된다면 이 역시 실패작입니다.

첫번째로 든 상황은 시간이 지날수록 병원체의 독성이 약해진다는 통념을 지지하는 논리로 보입니다. 하지만, 뒤집어 생각해보면, 병원체가 숙주를 죽이거나 심하게 앓게 만들더라도 다른 숙주로 이동할 방법만 존재한다면 병원체의 입장에서는 숙주의 건강을 고려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도 얻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인간의 역사에서 맹위를 떨쳤던 병들은 대부분 이렇게 숙주가 죽거나 심하게 앓아도 다른 숙주로 이동할 방법을 확보한 병원체가 일으킨 병들입니다.

의학이 일궈낸 그 어떤 진보도 상하수도 시스템의 정비만큼 많은 목숨을 살리지는 못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물을 통해 전파되는 수인성 전염병은 많은 사람들을 죽여왔으며, 지금도 개발도상국에서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있습니다. (개발도상국의 사망 원인 4위가 설사입니다).

Cholera

가장 유명한 병은 콜레라인데, 20세기 중반까지도 맹위를 떨치며 한 번 발생할때마다 수천에서 수백만의 사람들을 죽이곤 했습니다. 콜레라에 걸리면 콜레라균이 다량 함유된 설사를 계속해서 하게 되어 탈수를 일으킵니다. 설사로 오염된 물은 몸 밖으로 나온 콜레라균을 다른 숙주에게로 운반해줍니다. 한 명의 설사로 오염된 물은 수만 명을 감염시킬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숙주가 살아남았는지는 콜레라균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숙주가 최대한 많은 설사를 생산하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따라서 콜레라균은 치명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폴 이왈드는 2007년 TED talk에서 이러한 논리를 뒷받침하는 강력한 증거들을 제시해줍니다.

그의 설명처럼, 수인성 전염병의 독성을 낮추는 방향으로 선택압이 작용하기 위해서는 깨끗한 물 - 전염병을 매개하는 고리를 끊는 것 - 이 가장 중요합니다.

모기

모기나 다른 살아있는 매개체의 경우에도 비슷한 논리가 성립합니다. 숙주가 심하게 아파서 아무와도 만나지 못한채 누워만 있더라도, 모기가 쉽게 병원체를 옮겨줄 수 있습니다. 더 나쁜 것은, 아파서 앓아 누운 환자가 모기에게는 더 쉬운 사냥감이 된다는 것입니다. 즉, 숙주가 더 심하게 앓게 만드는 방향의 선택압이 작용할 수도 있게 됩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매년 백 만명 이상을 죽이는 치명적인 질병인 말라리아입니다. 말라리아 역시 매개체인 모기를 막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해결책일 수 밖에 없습니다.

병원성 전염병

병원에서는 역설적이게도 간호사나 의사들이 병원체를 옮기는 매개체가 될 수 있습니다. 병원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철저한 위생상태를 유지한다면 별 문제가 없겠지만, 실제로 모두가 청결함을 완벽하게 유지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간호사나 의사가 일단 매개체로 기능하기 시작하면, 모기가 옮기는 병의 경우처럼 병원체는 숙주의 건강에 신경 쓸 이유가 줄어들게 되고, 따라서 치명적인 방향으로 진화하기 쉬워집니다.

천연두, 결핵

천연두나 결핵은 조금 다른 경우입니다. 이들은 숙주이외의 매개체가 존재하여 병원체를 운반해주기 보다는 자신들의 터프함으로 건강한 숙주가 자신을 흡입할 때까지 숙주의 몸 밖에서 버팁니다. 천연두의 경우가 특히 강하죠 (영화로 만들어질만 하죠. ~_~).

No one knows exactly how long it can last in the external environment. In one study smallpox scabs were stored in an envelope that was left on a shelf in a lab cabinet. By sampling the scabs periodically, the researchers demonstrated viable viruses for thirteen years. They could not continue the study because thirteen years of testing had used up all the viruses in the envelope.

… Such durability explains why American Indians in the colonies of New York and Pennsylvania were decimated by smallpox. Lasting for a few days or weeks on the infamous smallpox-laden blankets distributed to American Indians from a colonial outpost would be difficult for most viruses, but not for a virus that could last more than thirteen years on a lab shelf. There were even more morbid consequences of this durability. In 1757, after French fores took over Fort William Henry in northeastern New York, their Indian allies began digging up English graves. They got the scalps they were after, but they also apparently retrieved smallpox viruses that were lying in wait in the corpses of those who had died from the disease.

결핵균은 몸 밖에서 수 주에서 몇 달 정도까지 살 수 있으며, 폴 이왈드는 이것이 바로 리팜핀 같은 결핵약이 등장하기 전에 결핵이 천연두 바로 아래에 위치한 치명적인 질병이었던 이유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편, 감기를 일으키는 병원체는 몸 밖에서 보통 몇 시간밖에 버티지 못한다고 합니다.

조류독감은 얼마나 위험할까

폴 이왈드는 이런 논의를 끌고 나가 조금 위험한(?) 주장 - ‘앞으로는 1918년의 스페인 독감같은 치명적인 독감의 대유행이 없을 것이다’ - 을 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시간 나는대로 쓰도록 하겠습니다. ㅎㅎ